본문 바로가기
우리 문화 유산/왕릉&묘

신라시대 고분군 1

by 쪼랩엄마 2023. 2. 23.
반응형

영주 순흥 벽화 고분

 

경북 영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서조도·비운문 관련 벽화무덤으로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비봉산 정상(높이 431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의 경사면에 있는 무덤입니다.

고분의 축조연대는 묵서명문의 기미중을 참고해 539년 신라 법흥왕 26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분의 분구는 원형이지만 지금은 경사진 남면 분구의 유실토가 퇴적되어 남북으로 약간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부는 널방과 널길(;널방에서 입구를 연결하는 길)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널방의 크기는 동·서 약 3.5m, 남·북 약 2m, 높이 약 2m입니다. 널길의 입구에는 돌문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천장은 2장의 돌이 나란히 덮여 있는데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는 채색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순흥 벽화 고분의 입구

벽화는 석회를 바른 널방의 네 벽, 널길 좌우 벽, 시상대의 측면 등에 그려져 있습니다. 먹선으로 윤곽을 잡고 그 안에 색채를 이용한 구륵전채법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동벽 오른쪽 윗부분에는 커다란 도굴구멍이 있어 동벽면 전체의 그림은 훼손이 심하여 남아 있는 동벽의 그림으로는 서조도와 서조도 아래의 산악도의 일부뿐입니다.

북벽은 벽면의 석회가 박락되어 잘 보이지 않으나, 석회가 남은 부분의 그림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북벽의 동쪽에는 산악도가 그려 있으며, 중앙부에는 먹선에만 의존한 백묘법으로 그려진 새 3마리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북벽의 서측에 그린 연꽃무늬의 경우에는 먹선 대신에 주선으로 윤곽을 잡고 노란색을 이용해 꽃잎이 그려져 있습니다. 북벽 서측의 연화도 위쪽으로는 비운문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널길의 동·서쪽 벽면에도 그림이 있는데, 서벽엔 뱀을 손에 잡아 감고 있는 사나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동벽에는 눈을 부릅뜬 힘 센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두 그림은 무덤의 시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경주 김유신 묘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통일신라 장수인 김유신의 무덤입니다.

지름이 30m에 달하는 원형의 큰 무덤인 이 묘의 둘레에는 탱주석을 세웠는데, 소면석과 신상석이 교대로 배치되어있습니다. 신상석은 모두 12지신의 상이 새겨져 있는데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입니다. 다른 왕릉이 갑주무장상을 하는 것과 다르게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오른쪽을 향해 있습니다.

 

봉분의 둘레돌은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둘레돌과 같은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능묘의 둘레돌은 봉분 표식 구조와 양식으로 흥덕왕릉의 봉분 표식과 비슷해 흥덕왕 때 김유신이 흥무대왕으로 추봉됨과 동시에 시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주 오릉

 

삼국시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4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삼국사기』에는 '사릉' 이라고도 합니다.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없어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 무덤입니다.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 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닙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 왕이 임금 자리에 있은 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 또는 사릉이라 했다고 합니다.

 

 

    황남대총

 

경주시 황남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입니다.

현재 외형이 복원된 황남대총은 2개의 원분이 남북으로 연접된 표형분으로 신라 최대의 봉토분입니다.

 

황남대총은 그 형태가 표형분에 속하는 부부총으로서 어울무덤으로, 무덤 덧널 형식의 변천, 고식 마구의 등장 시기, 신라토기의 편년, 북분에서 출토된 중국제 흑갈 유자기 소병의 매납시기 등을 근거로 남분은 4세기 중엽 경, 북분은 4세기 말∼5세기 초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황남대총의 바깥 둘레돌의 남·북분 연접상태로 볼 때, 남분이 먼저 축조되었고 뒤에 북분이 남분에 잇닿아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황남대총 남분의 피장자는 남자, 북분의 피장자는 여자이며 신라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남·북분 각각 봉토의 중심부에 덧널과 돌무지가 설치된 고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입니다.

남분의 돌무지 부분 안에는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이 동서로 배치되어 T자형을 이루고 있었고 장축 방향은 으뜸덧널이 동서로, 딸린덧널은 남북으로 되어있습니다.

 

안덧널 안에 칸막이를 세워 동쪽은 껴묻거리 수장부로, 서쪽에는 안널이 안치되어 있는데, 안널 안에는 60세 전후의 남자로 판단되는 피장자의 유골 일부가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피장자가 착장했던 금동관·금제 관드리개·금제 목걸이·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가슴장식, 금제 허리띠와 띠드리개등의 장신구, 금동장고리자루큰칼1개가 출토되었습니다

 

으뜸덧널 내부에서는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자의 유골 일부도 발견되었고, 바깥덧널의 뚜껑부분에도 금제 귀걸이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와 토기, 철제무기, 마구류가 있었고, 새무늬가 새겨진 청동제 거울 1점도 출토되었습니다.

 

북분은 남분의 북쪽 끝 봉토 일부를 절개하고 축조한 돌무지 부분 가운데에 장축을 동서로 둔 덧널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북분의 출토유물은 남분에 비해 장신구가 월등히 많았고, 무기와 마구가 적었으며 피장자가 큰칼을 착장하지 않은 대신 덧널 내에서 가락바퀴가 출토되어 피장자가 여자였던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습니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는 13∼30.3㎝입니다.

이 금관은 신라 금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느 것보다도 굽은 옥을 많이 달아 화려함이 돋보입니다.

 

 

 

 

 

 

 

 

 

천마총

 

천마총은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 목곽분)으로,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마총은 원형의 봉토분이며, 분구의 자락에는 돌로 쌓아 만든 호석이 돌담 형식으로 돌려져 있습니다.

적석부의 평면은 대체로 방형을 띠고 있는데, 전체 형상은 절두 방추형으로 마치 고구려의 돌무지무덤과 비슷합니다.

목곽부는 분구의 중심부 적석의 하부에 설치되었고, 무덤의 핵심부를 이루고 있으며, 벽과 천정이 목재로 짜인 목실입니다. 목곽 내에는 목관과 껴묻거리 수장 궤가 안치되었는데, 목관은 목곽의 중심에 동서 축선에 길이로 놓이고, 그 동쪽에 수장 궤를 남북으로 놓아 관과 T자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목관편의 방사성 탄소측정(원자력연구소 검사) 연대는 서기 340년±70년이므로 축조 연대는 서기 270년∼410년 사이에 들어가는데, 이 연대는 아마도 목관 재료 자체의 연대 때문일 것으로 보고 축조시기로는 이른 감이 듭니다. 발굴보고서에서는 소지마립간과 지증왕을 이 고분의 피장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마총 금관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천마총 장니 천마도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 그림입니다.

이 천마도에서 보여지는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5~6세기의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며,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반응형

'우리 문화 유산 > 왕릉&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시대 고분군 2  (0) 2023.03.04
가야시대 고분군 3  (0) 2023.02.21
가야시대 고분군 2  (0) 2023.02.20
가야시대 고분군 1  (0) 2023.02.20
백제시대 고분군 2  (0) 2023.02.15

댓글